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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일이 크리스마스였다. 연구소도 당일은 쉬려는 것인지 이브인 오늘이 가장 분주해 보였다. 모두가 분주하게 연구소 안을 돌아다니는데, 그 속에서 하라다 미노루만이 느긋한 걸음으로 복도 사이를 거닐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흙냄새가 그를 반겼다. 분명 바람 들어올 구멍 하나 없는데도 괜히 살결에 눈이 닿는 것처럼 이따금씩 손이 시렸다. 그는 팔뚝을 감싼 채 익숙한 화분 앞으로 향한다. 앓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굽힌다. 각각의 이름표가 꽂혀있는 화분 속에서 자라나는 이파리들은 아직 이 온도를 따스하다 느끼고 있을까. ‘내가 건드려봤자 좋을 건 없겠지.’ 무신경하게 구는 것 같아 보여도 그는 생각보다 이름표가 걸린 반혼초의 상태를 종종 확인했다. 확인의 끝은 늘 똑같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한숨을 내쉴 뿐이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가자니 뭔가 아쉽고, 일부러 느릿하게 기지개를 켜며 찡그린 눈 사이로 단단한 고목이 시야에 들어찼다. 아무리 실내라지만 지금은 한겨울이다. 그리도 무성하던 푸른 잎사귀들은 분명 온데간데없을 테지. 이제는 그저 쓸쓸한, … … 쓸쓸한,

 

“응?”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걸음을 옮겼다. 마른 흙이 뭉쳐진 곳을 지나칠 때마다 바짓단에 먼지가 붙어도 그는 모른체했다. 거대한 나무를 목전에 두고서 하라다는 눈을 깜빡였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약조한 생명의 겨울이 마냥 외롭지는 않겠구나, 그런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정말… 푸르렀으니까.

 

 

겨우살이

w.포탄

‘안뜰에서 겨우살이가 어떻게 자랐을까?’

 

하라다가 무작정 찾아간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츠기 노리유키였다. 라이는 늦게까지 바쁘다 했고, 하지메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으니까 남은 사람은 우츠기 하나였다. 그는 이 연구소에 대한 일이라면 뭐든 알고 있을 것 같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옳은 선택이었고. 우츠기는 그의 질문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는 듯 단번에 대답했다.

 

“겨울이 되기 전쯤, 실험을 위해 들였던 새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새?”

“네, 흰색 새였는데… 새장을 안뜰에 뒀습니다. 하지만 새가 갇혀 있는 것이 불쌍하다며 에노모토 양이 풀어준 일이 있었죠.”

“그래서, 어떻게 잡았는데?”

“... 새가 멋대로 날아다니다 연구에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하므로, 제가 죽였습니다. 하지메는… 어차피 실험에 쓰였을 아이니 조금은 자유를 주어도 좋았을 거라 했지만요.”

“뭐… 그렇네. 하지만 우츠기 군의 말도 맞잖아?”

“네. 요지는, 그 새가 겨우살이의 씨앗을 품고 있던 것이 아닐까...”

“겨우살이?”

 

자연스럽게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둘에게 다가왔다. ‘하지메, 오셨네요.’ 우츠기는 하츠토리를 보자마자 부드러운 인사와 함께 미리 준비해둔 컵에 코코아를 따랐다. 그런 우츠기가 익숙하다는 듯 하라다는 망설임 없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작은 마시멜로를 한 움큼 집어 코코아 위에 얹었다.

 

“자!”

 

마치 자신이 준비한 것처럼 웃으며 잔을 내미는 하라다의 모습에 하츠토리는 쿡쿡 소리 내어 웃었다. 능청스럽게 구는 하라다를 바라보는 우츠기의 시선 역시 그 웃음에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겨우살이는 갑자기 무슨 이야기였니?”

 

하츠토리는 따스한 컵의 온기를 느끼며 코코아를 한 모금 마셨다. 위에 둥실둥실 떠있는 마시멜로를 손끝으로 건드려보기도 했다.

 

“아, 안뜰 말이야. 시들은 나무의 가지 사이에 겨우살이가 자랐어. 주위는 다 시들었는데, 그것만 푸르니까 이질적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겨우살이는 기생목이니 올해는 나무가 빨리 시든 것도 이해가 가는군요.”

“기생목이라 하니까 좀 징그럽다~!”

“그것이 겨우살이가 살아가는 방식이니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티격태격하며 말을 주고받는 하라다와 우츠기 사이에서 하츠토리는 그저 웃다가, 컵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말했다.

 

“같이 보러 갈까? 겨우살이.”

-

그렇게 결국 셋은 겨우살이 앞에 서게 됐다. 가지 사이에 여기저기 엉킨 것처럼 자라난 겨우살이는 각각의 크기 자체는 작았지만 이 안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것이 예쁘냐고 묻는다면, 자연적으로 자라난 겨우살이는 아름답다기보다는 기괴한 모습에 가까웠다. 마치 하나하나가 얽히고설킨 둥근 세포처럼.

 

다른 생명에 기생하며 그것을 매개로 점차 자신의 영역을 늘려나가는 겨우살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과 부활의 상징이기도 했다. 타인을 죽음으로 이끌면서 동시에 자신은 생을 얻는다. 하라다 미노루는 문득, 이것이 자신이 알고 있는 ‘무언가’와 매우 닮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무렴 어떤들 싶었다. 그는 말없이 겨우살이를 바라보는 하츠토리와 우츠기 사이에 끼어들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인 거 다들 알고 있지?”

“네.”

“와,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 정말 하나도 기대 안 된다는 말투네.”

“...”

“미노루는 기대하고 있구나?”

“당연, 자, 잠깐만! 지금 59분이잖아…! 잊고 있었어!”

 

그때 거짓말처럼 하라다가 든 휴대폰 화면의 숫자는 변해 버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변함없는 미소를 지은 누군가가 먼저 말했고,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내키지 않는 눈치의 누군가는 나지막이 따라 말했다. 그리고,

 

“아니, 아니… 크리스마스 날 겨우살이 아래라는 이벤트를… 라이가 아닌 하지메와 우츠기 군이랑 함께했잖아!”

억울한 누군가의 외침은 그냥 겨우살이 아래에 묻어버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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