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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노리유키.

내가 태어난 날은 4월이지.

내가 죽으면, 그날은 새로운 성탄이 될까?

아니면…

The First Noel

W.최바에

성탄 전야, 우츠기 노리유키는 검은 코트를 입고 연구소 밖으로 나가려는 하츠토리 하지메를 보았다. 그는 흰색 귀도리를 쓰고 갈색 부츠를 신은 채 문밖을 나서고 있었다. 날카로운 겨울바람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그와의 거리가 더 멀어지기 전에 필사적으로 달렸다. 굽 높은 신발을 신었다는 것도 잊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문을 나서자 짧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그의 뺨을 부드럽게 할퀴었다.

 

"하지메!"

 

우츠기 노리유키가 외쳤다.

그 소리에 하츠토리 하지메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사복이었는데, 언제나처럼 조금 특이한 문양과 색을 가진 옷은 아니었다. 단정한 옷차림이었다. 한겨울에는 조금 춥지 않을까. 우츠기 노리유키는 숨을 고르며 자신이 매고 있던 붉은 목도리를 풀어냈다. 하츠토리 하지메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노리유키?"

"네, 하지메. 어디 가는 길이셨나요?"

"잠시 밖에 볼일이 있어서. 미리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금방 돌아갈 생각이었어."

 

하츠토리 하지메가 감은 눈을 슬며시 떴다. 옅은 붉은 빛이 일렁였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순간 식은땀이 흐른 등줄기의 한기를 무시했다. 그는 하츠토리 하지메의 목에 자신이 매고 있던 붉은 목도리를 감아주었다.

 

"밖이 추워요." 우츠기 노리유키가 말했다.

 

희다 못해 창백한 손가락, 차갑도록 얼어있는 손이 목도리를 단단해 매어주었다. 하츠토리 하지메는 옅은 숨결을 내뱉었다. 흰 입김이 연기처럼 퍼져나갔다. 노리유키는 떨리는 손으로 겨우 불안을 감추고 그의 옷차림을 정돈하고 있었다. 잠시간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같이 가도 괜찮아, 노리유키."

"…아뇨, 저는."

"오히려 같이 가 주었으면 하는걸."

 

네가 괜찮다면. 하츠토리 하지메가 말을 덧붙였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그 뒤를 따르며 "괜찮아요, 같이 가겠습니다."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이제 그가 바쁘다던가, 일이 밀려있던가, 방 안에 쌓여있는 서류나 책의 두께 같은 것들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하츠토리 하지메가 같이 가자고 그에게 말했다. 누가 거절할 수 있었겠는가? 감히, 우츠기 노리유키가? 그는 옅은 청색의 눈동자를 흐리며 하츠토리 하지메의 옆을 따라 걸었다.

 

성야 거리는 쉴 틈 없이 번쩍이고 있었다. 금으로 장식된 궁궐 한 편을 걷는 것 같았다. 집집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벽에 걸린 전등과 촛불이 일정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온화한 빛이 감도는 밤거리는 새 희망의 모양을 조각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찬송가가 들려왔다. 우츠기 노리유키가 귀를 기울였다. 천사들이 전하여준 주 나신 소식 들었네… 노엘, 노엘, 노엘… 성인 합창단의 웅장한 음색과 오르간 소리가 닫친 창 너머 조용한 밤거리에 울리고 있었다.

하츠토리 하지메가 잠시 발을 멈췄다. 그 또한 노랫소리를 들었다. 고요한 침묵. 우츠기 노리유키는 피부 한 겹 아래, 그 눈꺼풀 아래 잠긴 붉은 눈동자가 어떤 감정을 품을지 생각했다. 하츠토리 하지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추측했다.

 

"언젠간 노리유키를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어."

 

하츠토리 하지메가 발걸음을 떼며 입을 열었다.

 

"그랬나요."

 

그들은 점점 더 인적 드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인가가 사라지고, 길을 밝히는 등불도 적었다.

 

"공동묘지 근처에 버려진 교회가 있어."

"자주 다녀오셨나요?"

"손에 꼽을 정도. 그렇게 자주 들리진 않았단다."

 

자갈길을 따라 흰 울타리가 보였다. 공동묘지였다. 사람 손길을 많이 타지 않아 음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먼지가 쌓여있는 묘석의 이름을 확인할 여유도 없었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익숙한 걸음으로 울타리를 지나 폐교회로 향하는 그의 뒤를 따랐다. 빠드득, 뽀득,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두 쌍의 발자국이 줄지어 이어졌다.

얼어 죽은 잡초가 눈에 들어왔다. 하츠토리 하지메는 녹슨 자물쇠를 떨어트리고 거미줄이 잔뜩 쳐진 교회의 문을 열었다. 전기가 나간지 오래, 아무도 찾지 않는 병든 건물. 삐걱대던 나무 바닥. 녹슨 경첩에선 소리가 났다. 끼익, 열린 문은 사람 둘을 들이고 나서 자비 없이 육중한 문을 닫았다.

볕 없는 교회는 어두웠다. 우츠기 노리유키는 창백한 달빛에 색을 입히는 깨진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았다. 추레하고 무너진 파편 사이에 교회 바닥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하츠토리 하지메는 먼지 쌓여 갈색으로 변한, 과거에는 선명한 붉은색을 자랑했을 융단을 따라 걸었다.

그는 금가고 부서진 신상 앞에서 양손을 모았다. 제대 앞 부서진 천장을 타고 내려온 달빛이 비치는 자리였다. 차가운 빛은 그의 부드러운 미소와 온화한 표정을 박제시켰다. 그를 살아 움직이는 대리석 조각처럼 보이게 했다….

 

"자, 노리유키. 기도하자."

 

하츠토리 하지메가 작게 속삭였다.

 

"내가, 우리가 죽인 많은 생명을 위해서…….”

우츠기 노리유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하츠토리 하지메를 따라 부서진 신상 앞에 섰다. 언뜻 갈색으로도 보이는 융단을 지르밟았다. 왼편 성모상 앞편에 놓여있는 촛불 위에 흰 거미줄이 쌓여있었다. 녹은 밀랍이 조각상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이소이 라이의 말을 떠올렸다. `하츠토리님과의 첫 만남은 절이었어요. 왜 그 시간에 신사에 계셨냐고 물었더니, 애도(哀悼)… 였다고 하셨어요.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니, 일본에 있는 신사에서. 어라, 우츠기 씨.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아요.`

하지메는, 계속, 이런 애도를 이어왔을까. 우츠기 노리유키는 파리하게 질린 얼굴을 자신의 손으로 숨겼다. 깍지 낀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죽인 모든 생물을, 살아있는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신의 사랑 안에 돌아가기를 빌어왔을까. 이 죽음을, 모두 신의 사랑이라고. 신의 뜻대로 행해진 것이라고 믿으며.

 

"있잖아, 노리유키."

하츠토리 하지메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내가 태어난 날은 4월이지."

4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달이다. 그 거짓의 날에 하츠토리 하지메는 생을 얻었다. 생을 고지받았다. 우츠기 노리유키가 수척한 낯을 정리하고 고개를 들었다.

 

"항상 의문이었어. 내가 구원자라면, 사람들을 이끌 별이라면. 왜 신은 나를 12월에 태어나게 하지 않았을까."

 

우츠기 노리유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슴이 턱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당신은, 하지메, 당신은.

 

"내가 죽으면, 그날은 새로운 성탄이 될까."

 

하츠토리 하지메는 고개를 들어 그 붉디붉은 눈동자로, 적색의 석류와 같은 색의 동공으로, 어둠에 잠긴 십자가상을 올려보고 있었다.

 

"아니면……."

 

우츠기 노리유키는 그 조각같이 차가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아닌 것 같기도 하면서, 아주 작은 어린아이 같기도 한 부드러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아주 미세한 달빛에도 반짝이는 그의 별 같은 인간을 바라보았다.

 

“그저 거짓의, 바보들의 날일 뿐일까.”

 

우츠기 노리유키는 무거운 가슴을 짓눌렀다. 하지만, 하지메. 사람의 죽음은 오직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겁니다.

 

당신을 알고,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오직 그들에게만…….

 

 

댕―,

저 멀리서 성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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