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글 게시 순서는 신청순입니다.
문단의 경우 가독성을 위해 대사마다 나눔,
또한 각 PDF파일의 나눠진 문단을 참고하였습니다.
개인이 직접 편집하여 띄어쓰기 오류가 발생했을 수 있습니다.
(너른 이해 부탁드립니다...ㅠ_ㅠ)
즐겁게 감상해주세요!
시간이라는 게 작용하기 시작하노라면, 이 순간에도 행위가 뒤따를 수 있는 게 아닐까? 의자 밑이 끌리는 소리가 난다.
축복이 가득한 날이다. 그들이 아는 신과는 다른, 죄를 대신 지고 사람과 이웃을 사랑하며…… 이 세상에, 이 순간에 반드시 필요한 일일까? 모든 것이 유리된 것처럼 재즈풍의 음악이 귓가를 스친다. 변주되는 음악. 천이 스치는 소리. 또렷할 정도의 걸음. 창 바깥으로는 눈이 내리기에 여념이 없다. 일루미네이션이 가득한 순간이 시야를 가볍게 흐려낸다.
교묘하게 금을 난 틈을 비집어, 순간으로 자리매김한 24일과 25일의 언저리. 여기는 어느 층일까. 모두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속삭인다. 무수한 이야기와 글자 사이에 몸을 앉힌 남자들은 아주 작은 세계를 할당받는다. 왜 하필? 하필이냐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리하여 신을 믿고 있느냐 묻는다면, 글쎄. 이 테이블 위에 오를 말은 아니리라 여기게 되는 건 누구의 생각일까. 동그랗게 깔아다 둔 건 원탁이 아니고, 누군가를 위해 길게 뻗어다 둔 마지막 만찬조차 아니야.
마주 앉은 식사의 자리는 잘 알 수조차 없다.
누구든 여기에 있는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형태 그대로 근처를 더듬거리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는 해. 자리는 넷, 참여할 수 있는 자는 글쎄. 몇 명이라 이야기하는 게 맞는 걸까. 대천사의 이름을 얻은 남자는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로 그저 가만 테이블 위를 바라본다. 사각사각사각. 어딘가 긁히는 듯한 소리가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선 자리의 언저리에서, 점점 멀어지는 듯한…… 먹먹한 이명의 잔재.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는 두 사람의 몫. 인간의 몫이라 할 수 없는 경계선의 것들. 그리고 비어 있는 자리에는 곱게 접힌 냅킨 옆으로 이름 따위를 남겨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네 사람의 몫으로 놓인 접시. 세오도아 리들은 루메르트 오토마이어의 냅킨을 건드리지 않았고, 하라다 무테이는 튀고도 번진 잉크를 바라보며 조금 제게로 비틀어진 우츠기 란기리의 접시를 그의 자리에 온전하게 돌려놓았다.
빙글빙글 돌아가던 레코드판이 어쩐지 끼이익, 균열을 내는 착각이 일었다. 판에 새겨진 듯한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건너편에서 들려와야만 함에도 어딘가 멀다.
모든 건 모방의 형태를 띠고 있구나.
은자의 형태를 띤 남자는 조용히 말하며 웃었다. 낮게 깔리는 웃음기는 버석할 정도로 건조하다. 달그락,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함께한다.
네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많지 않나!? 높은 목소리는 아주 약간, 그들보다도 아주 약간 낮은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다. 전에는 그렇게 준비했었지. 남자 넷이서 먹는 양을 무시하지 말자고. 이건 한껏 높은 곳에서. 마치 모두 앉아 있는데 그들은 서 있는 것만 같잖아. 앉은 자락이 쓸려 정해지지 않은 색으로 일렁거리기를 반복한다. 가운데에 놓인 랜턴을 따라 존재는 깜박, 깜박, 인영을 드리우다 말기를 반복하는 듯 느껴진다. 실내인지 실외인지 모를 공간. 입술 사이로 문 나팔의 끄트머리에 불을 붙인다.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사과의 향. 캐럴 풍의 재즈. 실내도, 실외도 아닌 공간의 바깥에서 숨김이라곤 하나 없이 비추는 밤하늘의 일루미네이션.
언젠가의 날을 모방할까, 그럼.
아주 예전의 일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직은 친구일 때, 아직은 사이가 그래도 퍽 괜찮았을 적에. 서로가 서로를 ‘것’ 따위로 보지 않았을 때. 그들은 둘러앉은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기울일 것을 기울이고, 아닌 것은 아닌 채로 두며, 흘러가는 계절의 막바지에 서 있고는 한다. 가지런히 마주 보는 두 붉은 시선이 교차한다. 호의 하나 없는 듯 느껴지는 목소리는 상대의 것이다. 아아, 가벼운 긍정.
축복을 빌어.
이거, 재수가 없어지겠네.
웃음기 어린 목소리를 냄으로써 감은 눈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를 일이었으나 남은 존재의 너머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깔린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짠, 네 개의 잔이 부딪치는 소리는 아주 오래전의 것이다. 웃는 소리가 가득한 와중에도 그 누구도 웃고 있지 않았으며, 동시에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