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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꿈이다.

 

부드럽게 피어오른 밤. 난로는 따뜻하게 타오르고, 그 근처에 어깨를 기대어 앉아 서로를 위해 무엇을 준비했는지를 살펴보는 저녁의 순간. 세피아 빛 기억들. 상대에게 꼭 필요하다거나, 어울릴 거라 여긴 물품이 엉성함이 남은 깔끔한 포장 사이에서 손으로 쥐어진다. 트리는 세우지 않았고, 가벼운 장식만이 반짝거린다. 이어지는 건 감사의 인사. 고마워요. 고맙다. 내는 목소리가 언젠가부터 조금은 작아지기 시작했음에도, 낮게 울리던 것이 잔잔해져가는 순간이 세오도아의 어깨 옆에 있었다. 당신은 여전히 곧고, 잘 생겼어. 그런데 나는…… 나이를 알 수 없는 남자의 표정이 와락, 구겨지는 순간이 고스란했다. 꿈에 붙은 색채가 너절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낡은 영화에서 반복되던 회상은 온데간데없이 지금이 현실의 편린임을 강조한다.

 

그럴 필요 같은 건 없어. 잘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모르는 척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선물을 풀고 나면, 좁은 테이블의 한편에 고스란히 내려다둔다. 제자리에 마주 앉고 나면 그때부터는 식사 시간이다. 도망쳐 온 사람들이라 해서 무언가 달라지지는 않는 법이다. 누군가는 생일을 축하하고, 누군가는 기념일을 지낸다. 조금은 구실이 필요할 때, 나라나 사람들이 한껏 붙어오는 구실 정도는 눈을 감아내는 것처럼 보내기 마련인 것이다.

 

손재주가 퍽 좋지는 않더라도, 한껏 실력을 발휘해 만들어 준 파이가 두 사람이 먹기에는 어려운 칠면조를 대신한 요리 옆에서 조금 탄내를 피웠다. 그 옆에는 작게, 식사용으로 만든 미트 파이가 최근에 받았던 치즈를 머금고 접시 위를 채워냈다. 과자 구울 걸 그랬나? 얼마나 먹는다고. 그건 그렇지만요. 잔에 담기는 술은 아주 가볍게만. 언젠가부터는 차로 바뀌었지만, 그것도 좋았지. 어떤 맛인지 모르겠어. 뭘 받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마주하는 사람의 귓가에 흔들리는 귀걸이만이 눈에 한 번 들고, 의문처럼 입을 다문다.

 

적당히 어긋난 레코드판이 돌아가는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제대로 그 너머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는 주제에, 모르는 건 아니라 입술의 모양을 따라 떠올려낸다. 40여 년간의 시간이 헛되게 흘러가지 않았노라고. 모래알이 죄 빠져나가는 듯한 순간을 마주하면, 입술 안으로 까끌까끌하면 기분을 느끼고 만다.

 

테오도르Theodore. 신의 선물.

 

남자는 ■■의 이름을 한 번 곱씹어낸다. 그것이 ‘이름’이라 여긴 적이 언제였는지, 솔직히 말하자면 까마득하다. 먹먹하게, 모든 게 까맣게 번진 잉크에 제 몸을 묻히는 것과 같은 감상을 고스란히 곱씹는다. 쓴맛이 혀끝을 돌고, 목 끝까지 차오른 것에서 허우적거리면 이윽고 눈을 뜰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여기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분명 그럴 수 있다고…… 흐려지는 눈이 깜박, 깜박, 두어 번을 반복한다. 찾아오지 않는 수마. 불필요한 수면. 그러나 억지로 눌러다 붙인 잉크와도 같은 잠. 덕지덕지 눌어붙은 것들을 떼어내며 몸을 일으키는 순간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다. 딱, 작년까지만 해도 이것저것을 준비하느라 바빴던 집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슷하게 모방하려는 시도는 했으나 그러지 못한 것이 어쩌면 떠난 사람의 실패를 방증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누군가는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 누구도 없다.

 

손이 많이 가는 남자라 자신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투박하고, 깔끔하게, 혼자 남았으나 두 사람의 몫인 집에 서 있다.

 

혼자 남은 집은 생각보다 크다. 처음에는 좁았을 것이, 이렇게나 널찍하다 여겨버리고 만다. 며칠이고, 몇 달이고 이미 알고 생각해왔던 걸 무어라 해야 하는가. 무언가 준비하지 않더라도, 이것저것 들인 시간만큼이나 명백하게 두었던 것들은 어디에나 흔적으로 남아 기어이는 억지스레 눌러다 붙인 꿈 사이로 끼어든다. 당신은 참으로 고요히 눈을 감았지만, 그런 만큼이나 일상적인 모든 것들이 여전히 자리에 존재한다.
 

아마 숱하게 기억하게 되리라. 버리지 못한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다 여겼음에도, 세오도아 리들은 돌고 돌아 혼자 보낸 적 없는 기억의 날을 끼워다 누르는 형태로 세지도 않았던 오늘의 날짜를 알고야 만다. 창 바깥은 어둑어둑하지만 동시에 빛이 돌았다.

 

반짝거리는 투박한 알 전구의 빛들. 높게 올라간 별. 아주 멀리서 소박하게 들려오는 캐럴……. 여름은 이미 온데간데없는데 왜 나는 겨울에 서서 아직도 여름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는 건지. 이유를 알면서, 숨은 눌린다. 아는 이들은 그 특수성을 눈감은 이와 함께 모르는 체했으며 그저 한 마디를 물었다. 괜찮아? 아니.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아. 계절이 지나간다 해도 이 부분은 변하지 않은 채였다. 그를 위해, 루메르트 오토마이어를 준비할 수 있는 선물은 없었다. 마지막까지 투박하게 만들어주었던 파이의 탄내도 없다. 부러 고심하고, 고심하여 고른 식사 같은 건 준비하지 않았다.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으며, 잠이 들지 않더라도 살 수 있는 몸에 그나마의 인간성을 부여하여 얻어낸 꿈은 그 대조를 여실하게 드리웠다.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는 날에, 도대체 무엇이 선물이 된단 말인가. 나는 무슨 선물이었기에 제 선물을 빼앗긴 이후가 되어버렸는가. 외투조차 걸치지 않은 채로 문을 연 그가, 펑. 펑. 소리도 없이 내려오는 하얀 눈 사이로 자신을 밀어다 넣었다. 춥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신발을 끌고 움직이지만, 차갑게 식어가는 발끝 역시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아주 조금 뻗은 풀. 바람결에 흔들리는 금속 귀걸이의 마찰음. 어떻게든 옮기는 걸음과, 묘지기조차 크리스마스의 한 때를 보낼 믿는 자에게는 축복과 감사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구실의 날. 혼자 남은 남자가 새것과도 같은 묘석 위, 쌓인 눈을 맨손으로 밀어 치워냈다. 느리게 고개를 툭, 그 위로 누른 세오도아가 입 모양으로만 중얼거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누구에게 하는 말인 건지는, 확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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